불안을 감추는 네 가지 얼굴

불안을 감추는 네 가지 얼굴

“권력의 교만은 불안감 때문에 촉발된 교만이다. 이런 유형의 교만은 자기들의 상황이 불확실함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을 보증해 줄 충분한 힘을 추구하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삶을 희생시키면서, 사람들이 범하는 죄이다.”

라인홀드 니이버 저(著) 오희천 역(譯) 《인간의 본성과 운명》 (종문화사, 299쪽)

윤리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의 이 문장은 인간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우리는 강해지려 할수록, 사실은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한다. 힘을 쥐려는 손은 안전을 붙들기 위함이지만, 그 손이 타인을 밀어낼 때 비로소 교만의 윤곽이 드러난다.

지적 교만은 확신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바탕에는 제한된 인식이 있다. 우리는 일부를 보고 전체를 안다고 착각하며, 이해한 만큼 판단한다. 그러나 진리는 인간의 사유보다 넓고, 이해의 경계를 넘어 존재한다. 생각이 커질수록 겸손도 함께 자라야 한다.

도덕적 교만은 더 미묘하다. 옳음에 서 있다는 감각은 쉽게 타인을 향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선을 주장하는 마음이 타인을 재단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선이 아니다. 기준이 높아질수록 마음은 낮아져야 한다.

영적 교만은 가장 깊은 그림자다. 신앙의 언어로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말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믿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자신을 향할 때,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또 다른 자기 확장일 뿐이다.

결국 교만은 불안을 감추려는 시도이며, 신앙은 그 불안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길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더 큰 힘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인간의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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