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악기의 자리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질투는 대개 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것은 드러난 상처보다 얌전한 표정으로 머무를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데, 마음 한쪽에서는 자꾸 다른 사람의 자리를 바라보게 됩니다. 내게 들린 음은 너무 작고, 저쪽의 울림은 너무 크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질투는 단순히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음을 나누시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불신에 가깝습니다. 왜 저 사람에게는 저런 소리를 주셨는지, 왜 내 손에는 이런 악기만 쥐어졌는지 묻는 마음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질투는 결국 은사가 아니라 주시는 분을 흔들어 보는 시선이 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복음은 우리를 다른 자리로 데려갑니다. 하나님은 실수로 사람을 빚지 않으시고, 잘못하여 어떤 음을 맡기지도 않으십니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피콜로는 튜바가 될 필요가 없고, 튜바 역시 피콜로의 숨을 대신 살아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더 크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음을 제때에 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평안은 비교가 멈춘 자리에서 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과 주시지 않은 것 사이에도 뜻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은 조금씩 제 음정을 되찾습니다. 크지 않아도 필요한 소리, 눈에 띄지 않아도 빠질 수 없는 자리. 신앙은 어쩌면, 바로 그 자리를 조용히 받아들이며 끝내 자기 몫의 음악을 놓지 않는 일인지 모릅니다.